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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 교회의 8가지 자체검열 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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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금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형제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특정 주제들, “성도들간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라고 생각되는 주제들을 아예 피하고 또 중요한 신학/진리의 주제이지만 강단에서 많이 가르쳐지지 않는 있는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대화 주제 선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분명 필요한 덕목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자체검열을 나서서 하고, 더 나아가 필요한 진리마저 회피하는 이러한 PC문화(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문화)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특히 이 PC문화가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의 친절함과 선의를 악용하여 그들을 침묵시키려는 원수의 계교인 것임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용기를 내어 이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제들을 직면하고 활발히 논의함으로써 서로를 격려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고, 임박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나타남(디모데후서 4:8)을 고대할 시간이 아닐까요? 아래는 우리가 교회에서 대담하게 다시 가르치고 강조해야 할 여덟 가지 자체검열 주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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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적 정치관

교회는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이며 물질주의적인 좌파 이데올로기의 세계관을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대신, 자유 경쟁과 자유 시장을 인정하며, 국가 통제를 최소화하고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성경적이며 상식적인 보수적 정치관을 주일학교 부터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좌파 이데올로기는 개인, 국가, 교회 차원에서 모두 패망의 선봉 역할을 합니다. 한 개인이 좌파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경우, 그 사람의 세계관은 희생자/피해자 의식에 쩌들기 시작하고, 그 결과로 빈곤과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좌파 이데올로기가 국가에 침투할 경우, 하향 평준화와 근면성실의 동기를 파괴함으로써 경제를 파탄내고 전체주의적 악몽으로 몰아넣습니다. 좌파 이데올로기가 교회 내에 스며들게 되면,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적인 진보신학으로 변질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정면으로 거부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진정으로 성경적인 가치에 기초한 정치관을 가르침으로써 좌파 거짓말이 범람하는 이 세상에 노출된 다음 세대를 올바로 인도해야 합니다. 특히 21대 총선, 20대 대선, 그리고 올해 22대 총선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난 부정선거는 교회가 나서서 문제 삼고 나라를 살리는 마음으로 일어나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정교분리”는 정부가 교회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지, 교회에서 정치 얘기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는 이 세상은 더 악하고 악해질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적인 우파 정치관이 좋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사회는 온갖 죄악과 부정이 판을 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오직 복음이다라는 진리를 항상 강조하되, 그러나 예수님의 거룩한 몸/신부인 교회 내에 침투한 좌파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2. 성령의 능력

영국의 많은 교회들은 아직도 “중지주의Cessationism”를 받아들이며, 신약 성경 시대 이후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성도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감사하게 한국교회는 “기도원 신학”이 항상 있었기에, 순복음 같은 은사주의 교단이 아니다 하더라도 중지주의 같은 극단적 신학을 가르치는 교회는 소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오순절 교단도 지나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 앞뒤의 문맥을 보면, 고린도 교회 같이 은사제일주의, 분열주의 문제에 시달리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이 제일 필요한 공동체이었지만, 그런 교회에서도 사도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특히 예언과 같은 더 나은 은사들을) 추구하고 또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31, 14:1). 하지만 지금 많은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중지주의를 주장하지 않는 교회들에서조차, 성도들 간의 “단합”을 추구하고 교회의 분열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성령세례에 관한 주제를 아예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것과도 배치됩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후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5,8

이제는 모든 교회가 성령의 지속적인 역사에 대한 생생하고 체험적인 이해를 적극적으로 가르칠 때입니다. 우리는 성령 세례의 실체와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능력있는 전도에 활용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3. 이스라엘과 회복 신학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계획에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가르치는 “대체 신학”을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조금만 교회 역사를 공부해 보면 로마제국 국교의 잔재인 대체신학은 종교 개혁 이후에도 계속 교회 내에 남아 반유대주의의 근원이 되고 루터로 시작해서 나치 독일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사탄의 신학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 신학의 거짓에서 우리는 빨리 나와서 그대신, 이스라엘의 온전한 육체적 및 영적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회복 신학”을 받아들이고 가르쳐야 합니다. 회복 신학이 회복 될 때에 비로소 성도들은 신구약 성경 예언의 올바른 이해와 오늘날 국제뉴스들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하심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주요 국제 뉴스를 성경 말씀과 직접 연결시켜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설렘과 말씀에 대한 열정을 되찾게 해 줄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

교회는 중세시대 로마카톨릭교의 잔재인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을 배제하고, 초대 교회의 신앙을 따라 전천년설을 명확히 가르쳐야 합니다. 이 교리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휴거)의 임박성을 강조하며, 성도들이 영광 가운데 예수님과 공중에서 만나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합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세워질 예수님의 천년왕국을 소망하면서, 우리가 현재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5. 금식의 영적 훈련

개인 금식과 단체 금식은 교회에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금식과 장기간 특별 금식,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합심하는 단체 금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적 훈련과 겸손의 수단입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성도들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의 것을 찾게되고,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한 갈망을 더욱 깊게 합니다.

6. 십일조와 부모님 십일조

교회는 성경적인 청지기 정신을 가르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헌금하는 신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성도들이 자신의 지역 교회에 십일조하고 세계 선교를 지원하도록 독려하며, 또한 “부모님 십일조”를 통해 부모님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는 구약에서 명령하고 예수님께서 다시 강조하신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마태복음 15:4-6)을 실천하는 것이며, 균형잡힌 신앙 생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7a. 가정 질서: 아내의 남편 복종의 우선순위

난무하는 페미니즘 운동이 교회 내부에 깊숙이 침투함에 따라, 교회는 세상의 원칙들과 타협하게 되어 이제는 에베소서 5:22, 골로새서 3:18, 베드로전서 3:1에 기술된 명백한 가르침들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하게도, 이 세 구절들 모두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보다 먼저 제시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순서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혼 설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아내의 복종 이후에 남편들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이 순서를 꺼꾸로 뒤집어, 아내는 남편이 먼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보일 때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심각한 성경 해석 오류를 멈추고, 아무리 반문화적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용감하게 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7b. 가정 질서: 자녀 교육과 훈육

성경은 분명 자녀들을 제자 삼고 (구약) 열방을 제자 삼으라 (신약) 가르치고 또 어떻게 할지에 대한 분명한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은 자녀 양육, 특히 훈육과 관련하여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합니다. 교회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자녀의 전인적 양육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준수하도록 권장해야 합니다. 특히 세속적 지혜와 충돌하는 체벌을 포함한 교육 방식에 대하여 성경의 원칙을 우선시하며, 이 세상의 흐름에 반하는 결정이라 할지라도 가정 내 질서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워야 합니다.

아내의 복종과 남편의 그리스도 같은 사랑, 그리고 사랑의 매로 양육하는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회복될 때에,  교회는 이 무너져 가는 세상을 향해 외치는 전도 뿐만 아니라 보여주는 전도의 능력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8. 역사적 죄에 대한 회개 (한국 교회를 위한 특별한 주제)

특히 한국 교회 내에서는 일제 강점기 동안 교회가 하나님께 저지른 역사적 죄악에 대해 공식적으로 다루고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신사참배 뿐만 아니라 주일 대예배에 천황 숭배 의식(묵념)을 포함시킨 행위를 포함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주제는 너무나 외면되어 대부분의 한국 신도들은 이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편할 수 있지만 엄연한 역사적 죄악을 겸허히 인정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저지른 선조들의 허물을 회개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영적 부흥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부분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느덧 교회를 침투한 마몬의 영 (재물에 대한 욕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골3:5), 그리고 더 최근으로는 우한폐렴 락다운 기간 동안 정부의 압력에 맞서지 않고 공공예배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것도 있겠습니다.

결론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는데, 신부된 교회가 자체 검열 문화에 빠져버려 신랑의 나타나심을 제대로 준비하거나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는 것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서 입니다 (딤후 4:8). 물론 이 짧은 글로 각각 8가지 주제에 대해 충분한 논리나 설명이 없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 이 글로 이 8가지 주제를 선포하고, 차차 하나씩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이 지금 한국 교회에 자리잡은 PC 문화를 직면하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 내에서 이 일곱 가지 중요한 주제와 한국 교회에 특별한 문제에 대한 논의와 교육을 활성화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부흥과 깊은 영적 각성을 가져오며, 성경적 기초로의 회복(Ad Fontes)을 촉진할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오늘 한국 교회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서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간절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