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집힌 정의
10월 8일, 미국 국방성은 포트 후드(Fort Hood) 연쇄 살인 사건 범인 나달 말릭 하산(Nidal Malik Hasan)의 처형(處刑)을 생중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전쟁부(戰爭部, 전에는 국방부) 장관 피트 헤그셋(Pete Hegseth)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맘에 드는 발표입니다. 이것은 육십 년 만에 처음 있는 미국 군대의 공개 처형입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전 세계 좌파(左派) 세력들과 주류 미디어의 세계주의(世界主義) 엘리트들은 “충격적이다”라며 발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잠깐 생각해봐야 합니다.
위의 발끈하는 사람들은 1년 전 찰리 커크 암살 영상을 보며 기뻐했습니다. 공유하고, 패러디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13명을 잔인하게 죽인 한 남자의 공개 처형(處刑)에 대해서는 갑자기 그것이 “충격적”이라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2025년 8월, 우리는 미국에서 조용하게 사는 한 우크라이나 여성 이리나 자루츠카(Iryna Zarutska)의 공개처형을 목격했습니다. 퇴근길 경전철(輕電鐵) 차량에서, 대낮에, 단지 그녀가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녀 뒷자석에 앉은 한 흑인 남자 (그는 14번이나 유죄판결은 받은 전과범이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 그 하나로 매번 자유로 풀렸습니다) 가 그녀를 뒤에서 잔인하게 칼로 몇차례 찌르는 영상은 정말 충격 그 자체 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헨리 나워크(Henry Nowak)는 이제 갓 18살, 사우샘프턴 밤거리에서 칼에 찔려 죽었고, 죽어가는 소년을 수갑(手梏)으로 묶은 경찰은 “네가 지금 칼에 찔렸다고? 거짓말 하지마”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를 해친 유색인종 범인과 가족은 경찰들에게 “그는 인종차별자야!” 라고 했고, 그 말 한마디로 범인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범인취급 당했습니다.
그리고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 영국 방방곳곳에서 수십 년간 대놓고 최소 250,000명의 백인 영국 소녀들을 강간해온 파키스탄계 무슬림 갱단들은 대부분 오늘도 영국 거리를 자유롭게 걷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수 차례 글을 써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든것이 꺼꾸로 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권세는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로마서 13:4
이것이 국가(國家)의 존재(存在) 이유입니다(raison d’être). 시민이 기분 좋으라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칼입니다. 악한 자를 벌하는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대놓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서. 이것은 국가의 부패(腐敗)가 아닙니다. 국가의 본질(本質)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3:11은 그 목적을 더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공개 처형은 단순히 정의(正義)만이 아닌 것입니다. 앞으로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억제장치입니다. 공개 처형을 통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고, 다시는 그런 악(惡)을 행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確信)하건대, 천년 왕국에도, 비록 드물겠지만, 반드시 공개 처형(處刑)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聖徒)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王)노릇하는 그 1,000년 기간은 민주주의도 아니요, 지금의 자유주의도 아닐 것입니다. 악한 자는 조용히 재교육(再敎育)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 흐를 것입니다.
2026년 현재, 우리 사회는 너무 약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너무 여성스러워졌습니다.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을 더 키워 남자답게 행해야 하겠습니다.
제19조(第19條)를 폐지(廢止)하십시오. 정의를 되찾으십시오.
마라나타.